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안 마누엘 산토스 (문단 편집) == 정치 활동 == 이후 [[자유당(콜롬비아)|자유당]]에 입당했으며, 1991년 [[세사르 가비리아]] 당시 대통령에 의해 [[해외무역부]][* 2002년 [[무역산업관광부]]로 확대·개편되었다.] 장관으로 임명되어 1994년 가비리아가 퇴임할 때까지 재직했다. 1998년 [[안드레스 파스트라나]]가 집권하면서 정권이 [[보수당(콜롬비아)|보수당]]으로 교체되었지만, 2000년 [[재무세평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파스트라나가 퇴임할 때까지 재직했다.[* 2000년 8월 7일부터 2002년 8월 7일까지 재직했는데 정확히 '''2년'''이다. 보통 장관은 임명 문제 등이 걸리기 때문에, 저렇게 정확히 몇 년을 지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 아무래도 엘 티엠포가 보수당 산하의 언론이다보니, 이 인연 때문에 상대 진영임에도 불구하고 장관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유당이 [[에르네스토 삼페르]] 정권을 시작으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보수당 또한 파스트라나가 별로 못한덕택에 둘 다 서서히 망하기 시작했다. 이 때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이 자유당을 탈당하고 [[콜롬비아 제일]]이라는 정당을 창당해 대선에 도전하여 당선되었는데, 2006년 우리베가 재선에 도전하자 이를 1년 앞두고 산토스 대통령은 자유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국민통합사회당을 창당했으며 콜롬비아 제일과 연대했다. 어떻게 보면 철새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대한민국]]과는 달리 중남미에서는 당적 변경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이다. 어쨌거나 우리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재임 중 일명 "위정 스캔들"이 터졌고, 이를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우리베 정권은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었다. 다만 우리베가 안보를 강조했던 탓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만은 면했다.[* 사실 우리베는 현대 콜롬비아에서 반군소탕을 목적으로 이런저런 인권탄압이나 야당인사를 불법적으로 사찰하는 짓거리를 벌여서 이래저래 인권단체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은 대통령이었고, 다른 국가에서 마약소탕전을 벌인다고 콜롬비아에 대한 지원을 해주었을때 우리베가 지원의 일부를 야당인사를 사찰해서 정국을 유리하게 끌고가거나 정부군과 정부와 협력하는 민병대 소속에 불리한 증언을 할만한 인물들을 살해하는데 썼던탓에 미국조차도 이런 행각에 경악을 금치못해서 임기말에는 지원을 끊을 정도였다. 다만 국제적으로 우고 차베스나 룰라가 더 언급되다보니까 상대적으로 언급이 덜했던데다가 비록 과정이 더럽기는 했어도 치안이 어느정도는 괜찮아진건 사실이었었고, 복지를 빵빵하게 해주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원자재값 상승으로 경제도 나름대로 괜찮아지기는 했기 때문에 임기말에도 인기는 높았고, 퇴임후에도 여러모로 구설수가 많기는 해도 이때 다져놓은 지지층들이 많기때문에 입지를 지킬수있었다.허나 그럼에도 위낙 한짓이 많아서 2018년 이반 두케의 취임을 앞두고 대법원에서 위증과 학살사건에 대해서 조사를 받을 위기에 처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재판이 각하되어서 겨우 입지를 지킬수있었다. ] 우여곡절 끝에 산토스 대통령은 2009년 장관직을 사임했고, 이 무렵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었으나, 본인은 고사했다. 당초 여론은 우리베의 3선을 원했고, 산토스 대통령 또한 이를 지지했기 때문. 하지만 3선은 법적으로 금지된 일이었다. 정 하고 싶으면 개헌이 필요했는데, 일단 국회에서 개헌안이 통과되면서 이제 헌법재판소의 판결만이 남았던 상황이었으나 문제는 그게 '''위헌''' 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베 대통령은 이러한 헌재의 판결을 수용했고, 산토스 대통령은 이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10년 5월 30일 1차 투표에서 46.68%를 얻어 21.51%를 득표한 [[녹색동맹(콜롬비아)|녹색당]]의 [[안타나스 모쿠스]]와 함께 결선에 진출했다. 당초 여론조사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었으며 상당수가 모쿠스의 승리를 점치는 등 누가 당선될 지 모르는 선거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산토스가 69.13%를 얻은 반면, 모쿠스는 27.47%밖에 득표하지 못 해 논란이 되었다. 어쨌거나 산토스 대통령은 큰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